아테네 여행의 정점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아크로는 '높은', 폴리스는 '도시'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높은 언덕에 세워진 도시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끈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 아테네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곳을 대대적으로 재건했다.
이후 바로 이 언덕에서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가 꽃피고 철학, 예술, 문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였으니, 서구 문명의 상징으로 불리우만 하다.

워낙 날이 더우니 아침에 문 열 때 입장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이른 아침 표는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오전 9-10시만 되어도 30도가 넘어가면서 하루 종일 더운 건 매한가지이니, 한낮의 해가 살짝 꺾인 늦은 오후로 예약을 잡았다.
특히 더운 날 아크로폴리스에 방문할 때는 모자, 선글라스, 물은 당연하고, 편한 신발이 필수이다.
언덕 정상까지 이르는 길은 경사도 있고 계단도 많다.
그늘은 거의 없고 조금의 그늘이라도 있는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디오니소스 극장을 만난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처음 세워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극장이자 서구 연극의 발상지인 곳이다.
초기에는 나무 벤치 형태였으나 기원전 4세기경 현재와 같은 웅장한 대리석 석조 극장으로 재건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의 대문호인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등의 위대한 비극이 이곳에서 처음 상연되었다고 한다.
이후 로마 제국 시대(서기 4세기경)까지 약 9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극 경연과 종교 축제, 심지어 정치적 집회 공간으로 활발히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귀빈용 대리석 좌석이 남아있다.

아테네 시내가 내려다보일 정도로 올라갔을 즈음, 아크로폴리스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헤로데이온)이 나타났다.
개인적으로는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인데, 엄청난 규모뿐만 아니라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
아테네의 백만장자이자 정치가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서기 161년에 완벽한 로마식 스타일로 건립한 음악당이다.
원래는 삼나무로 만든 화려한 지붕이 덮여 있던 5,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지붕은 소실되고 현재의 웅장한 아치형 벽면과 석조 무대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여름 '아테네 에피다우루스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로 사용되며, 조수미, 프랭크 시나트라,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거쳐간 곳이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밤에 밤하늘을 지붕 삼아 이곳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입구부터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지 30분 만에 마지막 계단 고지를 넘어 드디어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 1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는 유네스코의 상징 마크 자체인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이곳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곳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눈으로 볼 때 완벽하게 곧고 바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선이 거의 없는 건축물이다.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배가 부르듯 미세하게 불룩하게 만들어 기둥이 안으로 굽어 보이지 않게 했고 (엔타시스 공법),
기둥을 수직으로 세우면 위로 갈수록 벌어져 보이기 때문에, 모든 기둥을 아주 미세하게 안쪽으로 기울여 세웠다.
건물 바닥면 또한 평평하게 만들면 가운데가 가라앉아 보이기 때문에, 중앙부를 사방 가장자리보다 약간 솟아오르도록 완만한 곡선으로 다듬었다.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위해 당대 최고의 수학과 미학이 총동원되어, 현대 건축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천재성이 집약된 곳이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도 파르테논 신전을 전후좌우로 돌며 살피다 보면,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상에 250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느껴진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을 떠나기 전, 꼭 보아야 하는 곳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에렉테이온(Erechtheion)이다.
에렉테이온은 파르테논 신전 북쪽에 위치한 신전으로, 하나의 신만을 모시는 일반적인 신전과 달리 아테나, 포세이돈, 그리고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 등을 동시에 모신 고대 아테네에서 가장 신성시되었던 복합 신전이다.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비대칭 구조가 독특하고, 신전 내부에는 아테네의 주권을 두고 아테나 여신이 올리브 나무를, 포세이돈이 소금물 샘을 만들었다는 신화 속 대결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이 신전의 백미는 건물 남쪽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6명의 아름다운 여인상 기둥(카리아티드)인데, 섬세한 드레스 주름과 우아한 자태에 놀란다.
더 놀라운 건 아크로폴리스의 카리아티드는 정교한 모조품이라는 것.
진품들은 환경 오염과 도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두 실내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6개 중 5개는 언덕 바로 아래에 있는 현대식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문제는 마지막 1개의 여신상.
19세기 초 영국의 엘긴 백작이 떼어가 현재 런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리스 정부는 이 마지막 한 개를 돌려받기 위해 지금도 영국과 치열한 반환 소송 및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내려갈 시간.
무더위에 너무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어른도 아이들도 이 정도면 큰 불평 없이 잘 다녀왔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곧장 맥도널드로 향해 아이스크림으로 아이들 열기를 식혀주었다.


감자와 치즈가 들어간 파이도 하나씩 먹으며 에너지 보충을 한다.

그리고 견과류와 꿀이 들어간 그릭요거트로 마무리!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도시 밑에서는 결국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는 우리의 일상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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