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조급해진 남편과 내가 구글 플라이트 사이트를 열어놓고 즉흥적으로 선택한 코펜하겐.
별다른 이유도, 계획도, 기대도 없이 선택한 여행지였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참 좋았다 되뇌이게 되는 곳이었다.
코펜하겐 공항에 내려 찾아보니 마침 호텔 바로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공항에서 대중교통으로 20여분만에 시내 중심에 도착할 수 있으니 참 편리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밖으로 나섰다.
4월 중순, 파리에는 봄이 성큼 다가왔는데 코펜하겐에 오니 겨울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어디서 첫 식사를 할까 고민하는데, 남편이 버거가 어떻겠냐고 한다.
에잉?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버거를 코펜하겐까지 와서 먹는다고?
떨떠름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남편이 덧붙인다.
"코펜하겐에 사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여기는 꼭 가야한다던데?"
'현지인 추천'라는 말에 약한 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남편이다.
그렇게 가게된 내 인생 버거집, 가솔린 그릴(Gasoline Grill)이다.
나중에 보니 지점이 대여섯 군데 있었는데, 지인이 알려준 대로 Niels Hemmingsens Gade 20에 있는 가솔린 그릴을 찾았다.
도착해보니 테이블이 없는 곳이어서 잠시 망설였는데, 창가쪽 의자에 아이들 앉히고 나랑 남편은 옆에 서서 먹으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메뉴는 간단하다.
버거 다섯 종류에 감자튀김, 음료수와 디저트 두 종류.
버거+감자튀김+음료수를 콤보로 주문할 수도 있다.
주문 즉시 만들어진 버거는 아직 뜨끈하고, 감자튀김도 막 튀겨진 듯 신선했다.
이건 핫 치킨 샌드위치.
"내쉬빌과 한국을 섞은 맛"이라는 설명답게 바삭하면서도, 양념치킨을 떠오르게 하는 매콤달콤함이 느껴진다.
남편이 시킨 치즈버거는 치즈, 양파, 피클만 들어가 있어 고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조합이다.
도톰한 패티는 부드럽고 풍미가 가득하다.
실패가 없는 오리지날 버거는 쉑쉑버거가 떠오른다.
나는 생양파를 즐기지 않아서 거의 다 빼놓고 먹어야 했지만, 양상추와 토마토의 신선함이 좋았다.
피자에서 도우가 그러하듯, 버거는 번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의 번은 따로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번이 주는 첫인상이 좋으니 그 안의 재료들은 뭐를 해도 좋아보인달까.
코펜하겐을 다녀온지 벌써 반년이 되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저 버거를 먹을 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른다.
추운날 좁은 가게에서 소스며 야채며 몽땅 흘리며 먹는 아이들의 입가를 수도 없이 닦으며 차근차근 베어 물었던 버거.
버거라는게 단순한 음식 같으면서도, 곳마다 참 맛이 다르니 그것도 신기하다.
가솔린 버거, 코펜하겐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이유가 분명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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