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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III (April 2015~)/2001. 로잔, 라보 Lake Geneva

로잔에서의 하루 (프랑스-스위스 국경 넘기)

by jieuness 20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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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도 꽤나 즉흥적이었다.

유난히 따뜻했던 파리의 겨울 내내 눈이 보고 싶다던 엘리를 위해

J가 준비한 깜짝 여행이었다.

목요일 오후에 파리를 출발, 네시간 정도 걸려

스위스 국경 근처 마을인 Ornans에 도착했다.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는데, 시간도 늦었고 동네에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아

불빛이 켜진 곳 아무데나 들어갔다.

Le Chavot라는 곳이었는데 아주 친절한 직원이

강을 옆에 끼고 있는 테라스 자리로 안내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식당에 들어설 때는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는데

곧 우리가 있던 테라스에 테이블이 거의 다 찼다.

엘리는 어린이 메뉴로 (화덕에서 구운) 피자를 시켰고,

 

나는 동네에서 잡았다는 생선튀김,

 

J는 소세지와 꾸덕한 치즈 그라탕이 나오는 지역 음식을 추천받아 주문했다.

기대없이 들어간 곳이었는데

친절한 서비스와, 따뜻하고 푸짐한 음식 덕분에 여행의 시작이 좋았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행복한 그녀.

 

다음날 아침.

스위스 국경을 넘어 로잔을 가보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30분 정도 달리니 드디어 눈이 보이기 시작.

차를 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는데도

엘리는 신났다.

 

스위스 국경 도착.

스위스는 EU 국가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국경 검문소를 지나야 하고,

스위스 고속도로에서 운전하기 위해 필요한 스티커 (vignette)를 구입해야 한다.

12월부터 내후년 1월 (2019년 12월 - 2021년 1월)까지 유효하고,

국경에서 40프랑에 구입할 수 있다. (카드 가능)

구입한 즉시 그자리에서 차 앞 유리에 붙여야 하는데,

이게 떼어질 때는 다 찢어지게 만들어져서 일회용이다.

우리는 렌트카라 만약 1년 내로 스위스에 다시 갈 일이 생긴다면

vignette를 다시 구입해야 하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아깝게 느껴졌다.

 

국경에서 로잔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로잔역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오늘 하루 천천히 도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오늘도 행복한 엘모 덕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EU가 아닌 스위스에서는 무료 로밍도 되지 않아

전화를 다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꿔야 했다.

예전에 제네바 공항에서 환승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없이 평소처럼 전화를 사용한 후 (그래봤자 카톡과 짧은 통화 한 번 이었는데)

요금 폭탄을 맞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통신사인 Free는 미국, 캐나다에서까지 무료 로밍이 되는데

바로 옆나라인 스위스에서는 안된다니 아이러니.

 

로밍이 안된다는 건 구글맵도 사용 못한다는 뜻.

낯선 도시에서 휴대폰의 도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하지만 그 덕분에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하루였다.

100년이 넘었다는 베시에르 다리 옆으로 난 가파른 계단을 걸어올라가면

 

로잔 대성당에 도착한다.

 

여기서 보는 로잔 전경은 필수이다.

 

성당 주변을 이리저리 산책.

 

 

요리와 음식에 관련된 책을 전문으로 하는 책방을 발견했는데,

문이 닫혀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창문 너머로 오래된 책 냄새가 느껴지는 듯 했다.

영어와 불어로 된 고서들.

 

성당 옆으로 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꽤나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목조 계단이 아랫 동네까지 이어진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만난 식당.

케이블카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코로나 시대에 최적화 된 식당이었네.

 

인파가 보이는 대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Place de la Palud, 파루드 광장에 닿는다.

이 알록달록한 동상은 정의의 여신상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우리가 들어간 곳은

시내에 Co-op 백화점 옥상에 있는 푸드코트.

로잔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 후 들어간 맞은 편 스타벅스.

J가 화상회의를 해야해서 와이파이를 찾아 들어갔는데,

엘리가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잠들었다.

30분 넘게 팔이 저리도록 그녀를 안고 있어야 했다는.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가 잡힌 김에 대충 다음 행선지를 계획해

다시 길을 나섰다.

 

메트로 타러 가는 길.

 

메트로를 타고 제네바 호수 (현지에서는 레망 호수라고 불리우는) 방향으로 내려가

종점에서 내렸다.

우리가 기대한 눈은 없지만,

맑은 하늘에, 그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맑은 호수에,

저멀리 설산까지 마음이 깨끗해지는 풍경이다.

 

박물관, 갤러리에 관심 없는 J가 웬일로 가보고 싶다 한

올림픽 박물관.

로잔은 IOC의 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추억을 자극하는

동상과 설치물들이 가득하다.

 

 

로잔에서 2020년에 열린다는 청소년 올림픽을 기념해

설치된 진짜 봅슬레이도 타보고,

폐장 시간이 한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시작은 올림픽의 역사부터.

올림픽의 시작, 오륜기의 유래, 근대 올림픽으로의 발전 등등

눈으로 보며 귀로 들으며 스토리를 따라 간다.

 

그리고 역대 올림픽 관련된 전시가 시작되는데,

추억 속의 88올림픽 기념품들이 반갑다.

나는 88올림픽 세대는 아니였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오랫동안 집집마다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을

호돌이, 호순이 모형,

 

태극무늬 부채.

 

나머지 공간은 올림피안과 경기종목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는데,

역대 올림픽 선수들을 따라 빠른 편집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영상물을

몇 번 반복해 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뭉클하기도.

 

요즘은 상업주의와 사회경제적 문제 등을 이유로 올림픽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커졌다지만,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J와 나는 서로 다른 장소와 환경에서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제3의 도시에서 열린 올림픽에 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좀 급한 걸음으로 한시간 정도 걸려 전시를 다 보았는데,

여유 있게 두어시간 보내도 좋을 곳이었다.

특히 실제 올림피안들의 운동복, 운동기구 등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구경하는게 보였고,

이야기거리가 많은 곳이라 지루하지 않았다.

 

문이 닫힌 박물관을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박물관 계단 위에서 보이는 호수 풍경도 아름답다.

 

다시 차를 몰고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

스위스의 Five Guys라는 Holy Cow!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국에 갈 때마다 들리는 Five Guys를 기대하며 먹어서일까,

J와 나 모두 '나쁘진 않지만 맛있지도 않다'는 의견.

패티가 약간 퍽퍽하고, 빵도 좀 건강한 맛이다.

막 튀긴 감자튀김은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처음으로 가본 스위스에서의 첫 도시 로잔.

그러고보니 (사진에는 없지만) 타이거까지 네 식구가 처음으로 한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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