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이들과 작년 이맘때에 알자스에 갔던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어디 갔었더라? 하면서 블로그를 찾아보는데 아무 글도 없어 놀랐다.
그리하여 무려 일년 만에 쓰는 여행기.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 파리에서 출발해 늦은 밤중에야 알자스 숙소에 도착했고,
그 다음날 아침 바로 숙소에서 한 시간 떨어진 스트라스부그로 향했다.
스트라스부그 현대미술관 옆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곧장 스트라스부그의 유명한 관광지역인 쁘띠프랑스로 향하는 수로와 연결이 된다.
파리에서 보던 집들과는 색도 모양도 다르다며 재잘대던 1호.
알자스 지방은 역사, 지리, 정치적인 이유로 의식주 모든 생활양식에 독일의 영향이 깊이 내려있는데,
대표적으로 pan de bois라고 불리는 이 건축양식이 그렇다.
나무기둥을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고정시켜 만드는 이 목조건물들은
놀라우리만큼 견고해서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이 아직까지도 건재하다.
알자스 지방에서,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꼭 먹어야 하는 것이 빵데피스 (pain d'épices),
말 그대로 "향신료빵"이다.
파리에서도 연말이 되면 곳곳에서 pain d'épices alsacien이라고 해서 알자스식 빵데피스를 파는데,
계피, 생강, 아니스, 육두구, 정향, 고수씨 등등의 온갖 향신료 가루와 꿀을 넣어 만든
호불호가 있는 빵이다.
스트라스부그에서 가장 유명한 빵데피스는 아무래도 Mireille Oster일 듯.
빵데피스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그녀의 이름을 딴 가게에서는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빵데피스를 만날 수 있다.
딱 네 가지 재료, 밀가루, 꿀, 향신료, 버터에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얻은
여러 재료들을 더해 다양한 종류의 빵데피스를 만든다.
아마도 연말모임에서 나눌 대형 빵데피스를 주문해 가져가는 손님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점원의 추천으로 오렌지 젤리가 들어가 있는 빵데피스 한 봉지를 샀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빵데피스로 남아있다.
알자스에서 또 먹어보아야 하는 것이 쿠글로프 (kouglof)인데,
분트 케익 모양의 담백한 빵이다.
파리에서 먹는 쿠글로프는 얇게 썬 아몬드가 위에 조금 뿌려져 있거나
건포도가 들어있곤 했는데,
알자스에서는 통아몬드를 잔뜩 박아 파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알자스의 유명한 빵집인 메종 알자시안 드 비스퀴터리.
마침 도시 투어를 하는 그룹이 가게 앞에 서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알자스 대표 빵집이다.
메뉴도 다양하지 않아서, 사진에서 보이는 빵 겸 케익 종류 몇 가지와,
알자스 마카롱, 초코렛, 쿠키 등을 판다.
J가 쿠글로프 한 덩이를 사가지고 나왔다.
저 때만 해도 아기아기했던 2호.
저때나 지금이나 손에 쥐어주는 족족 다 먹어치운다.
빵을 주근주근 먹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멀리 스트라스부그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알자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스트라스부그답게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없는 곳이 없고,
파리에서는 일부러 찾아갈 만한 거대한 트리들이 곳곳에 보인다.
이때가 점심쯤이 되어 식당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사람이 많아도 맛있는 곳을 찾아 가려는 내 욕망과 상관없이
J는 사람 없고 아이들과 같이 가도 불편하지 않을 곳을 우선 고른다.
그렇게 해서 꽤나 한산해보이는 식당 겸 바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음식이 괜찮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일단 들어가자마자 방쇼를 한 잔 시켜놓고 (아마도) 메뉴를 보고 있는 J.
메뉴 선택은 유일한 알자스 지방 경험자인 J의 몫이다.
알자스 지방의 피자인 플람퀴첸 (flammkuchen)을 두 가지 맛으로 시켰고,
또 다른 지역 음식인 양파 타르트를 시켰다.
알자스 지방에서는 대체적으로 탄 음식에 관대한 편인듯.
나는 못 참고 탄 부분은 다 떼어내고 먹었지만, 그 불편함만 빼면 맛은 좋았다.
이 또한 지역 음식이었는데, 오래 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알자스에서는 햄이나 고기에 당근, 감자를 넣어 푹 끓인 스튜 혹은 타진 형태의
음식들이 많았는데 추운 날씨와 잘 어울리며 속이 따뜻해진다.
베이컨만 골라먹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입맛의 2호.
배를 든든히 채우고 마저 걸어서 대성당에 도착.
세계 최대 규모라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며 코비드 환자가 막 늘어났던 때였던 걸 생각하면,
예년보다 규모가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꽤나 활기차게 북적였다.
도시 곳곳에서 예수님 구유를 볼 때마다 여러 질문을 던지던 제인.
해가 짧아진 탓에 기온도 갑자기 떨어지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서
아이들 화장실도 갈 겸 (여행 중에 가장 큰 문제!) 카페에 들어갔다.
알자스산 맥주 한 잔과 소세지를 시켰는데,
저렇게 통으로 칼과 함께 도마에 올려져 나왔다.
짜기는 또 얼마나 짠지. 초박형으로 잘라 먹다가 냅킨에 고이 싸가지고 숙소로 가
몇 날 몇 일을 나누어 먹었다.
내가 일년 중 12월을 특히나 좋아하는 건 추우면서도 따뜻한,
어두우면서도 밝은, 대비의 미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여준 스트라스부그 덕분에
알자스 여행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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