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박물관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다가 지하철로 가기 쉬운 콥틱 카이로를 선택했다.
콥틱 카이로는 마르코 사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콥틱 정교회의 근거지이다.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풍파를 지나 보존되어 온 커뮤니티로,
천이백만명 정도 된다는 이집트 콥틱 정교회 신도들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Mar Girgis역에서 내리면 역밖으로 나오자마자 생경한 풍경이 보인다.
서양과 아랍이 묘하게 공존하는 교회 건물들이 보이고,
히잡을 쓰지 않고 반팔을 입은, 다소 자유분방해 보이는 여인들도 눈에 띈다.
우리가 콥틱 카이로에 도착한 시간이 4시반쯤이었는데,
곧 문을 닫는 시간이라 서둘러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에서는 대부분의 유적지가 4-5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일찍 움직여야 한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건 콥틱 성당이 아닌 그리스 정교회 St George 성당이다.
캐나다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을 공소로 사용했던지라
동방교회의 이콘 등이 낯설지만은 않다.
아름답고 정교한 이콘뿐만 아니라,
사제가 신자가 아닌 제대를 향해 서서 미사를 드리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 교회와는 성당 구조가 확실히 다르다.
친구가 빌려준 일본어로 된 이집트 가이드북을 들고 동선을 고민하는 J.
성당 뒷편에는 수녀원도 있는데,
마리아와 성요셉,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을 마셨다는 우물과 연결된 수도가 있어
손을 씻거나 마실 수 있다.
나는 진짜 우물을 찾고 싶었는데, 이날은 보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한 번의 시도 끝에 찾을 수 있었다.
(뒤에 다시 이야기 하기로.)
성당을 나오면 성당과 성벽을 양쪽으로 하는 좁다란 골목들이 구비구비 이어져 있다.
우리는 중간에 길을 잃어
이렇게 약간 으스스한 공동묘지 구역까지 갔다가
마구 짖어대는 개를 피해 다른 골목으로 빠졌다.
일부는 꽤 깔끔하게 보수가 된 듯 하지만,
폐허처럼 방치된 곳도 여럿 있었다.
성당과 여러 유적들이 이미 문을 닫아 들어가 보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걷다가
대로까지 나가게 되었다.
방금 콥틱 카이로와는 확실히 다른, 다시 평범한 카이로의 모습이다.
지하철역을 찾으러 가다가, 우리가 지나온 깨끗하고 정돈된 길로 되돌아가면 쉬울 것을,
본인의 방향감각을 믿고 굳이 사람들 사는 동네로 들어가는 J.
예전에 꽤 모험적인 걸 즐기던 나는 점점 겁이 많아지는데
J는 늘 호기심이 넘치고, 현지인들의 생활을 최대한 가깝게 느끼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런 골목을 한참 헤매야 했다.
양쪽으로 각종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가축동물들과 사람들이 한데 엉켜 지내는 그런 동네.
낯선 동양인 둘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을 따갑게 받았다.
결국 동네 끝에서 한 청년이 "메트로?"를 외쳐준 덕분에, 겨우 역을 찾았다.
역에 도착한 시간은 바야흐로 5시였다.
첫날 콥틱 카이로를 충분히 보지 못한 것이 아쉽고,
결정적으로 성가정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과, 우리가 찾지 못한 Hanging Church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다음날 다시 Mar Girgis역을 찾았다.
유명한 Hanging Church는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틀면 바로 나오는 곳이었다.
전날 좌측직진본능만 발휘했으니 못 찾을 수밖에.
콥틱 카이로의 가장 대표적인 콥틱 정교회 성당인 Hanging Church.
3세기 경에 교회 본신이 다른 곳에 있었고, 지금 장소에는 7세기말에 지어졌다고 하니
초대교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10년만에 재단장을 마쳤다는 성당 안뜰은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마저 든다.
들어가자마자 압도당한 내부는 모스크와는 또다른 화려함과 단아함이 있다.
성당 구석의 작은 스텐레스 창문은 또 얼마나 예쁘던지.
기도와 구경을 함께 마치고 다시 성당 뜰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성당은 고대 바빌론 요새와 맞닿아 있다.
Hanging Church라는 이름은 요새의 끝에 "매달려" 있는 위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전날 방문했던 그리스 정교회 앞뜰을 가로지르면
공원처럼 생기는 공동묘역이 나온다.
그 중심에 자그마한 성당이 있는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잘 모르고 많이 찾지 않지만, 성가정이 머무르셨던 성지이다.
우리는 친구를 통해 미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안내글이나 특별한 표시가 없어 지하 크립트에 내려가보기 전까지도 여기 맞나...계속 고민했다.
마리아, 성요셉과 예수님의 성가정이 주님이 보내신 천사의 분부대로
헤로데의 핍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을 때
이곳에서 지내셨다고 전해진다.
이게 바로 성가정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이다.
페인트통 같은 커다란 플라스틱통이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저 통 덕분에 깊은 우물물을 조금 길어 손을 씻어볼 수 있었다.
지하 크립트 구석에서 드디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성가정이 이곳에서 머무르셨다는 불어 안내.
이집트에서는 이렇게 영어보다도 불어의 흔적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J의 말에 따르면 초기 이집트 유적 발굴 시 프랑스 정부가 많이 개입되어 있었고
이집트학에서 유명한 고고학자중에 프랑스인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성가정이 머무르셨다는 크립트에서도 조금 더 내려가야 하는 동굴.
많은 기도지향이 수북히 쌓여 있었는데,
우리가 있는 동안 두명의 이집트 아가씨들이 와 기도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지배적인 이집트에서
이렇게 특별하고 아름다운 성지들을 만나볼 수 있어 감사했던 콥틱 카이로.
콥틱 정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성가정의 여정을 아주 짧게나마 함께 해 본것은 정말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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