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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III (April 2015~)/1510-11. 이집트 Egypt

(6) 드디어 피라미드 2탄 - 다슈르 (Dashur)의 굽은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

by jieuness 201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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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라를 떠나며 운전기사 아흐만에게 다음은 다슈르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는 모르겠다고 한다.

손으로 산모양을 만들며 '다슈르', '피라미드' 열심히 설명해 봤지만

'거기에는 피라미드가 없다'는 말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피라미드라는 것이 워낙 흔하고 특별할 게 없어 

다슈르처럼 외진 곳에 있는 피라미드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듯 하다.

 

결국 구글 지도에서 다슈르를 찾아 우리가 길안내를 시작했다.

아흐만이 중간에 몇번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도착했는데,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리니 아흐만이 "낫 해피"라고 한다.

본인 차가 험한 길을 달리는 것이 맘에 안 들었던 것.

아흐만에게는 이 현대 액센트가 밥줄이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슈르는 굽은 피라미드 (Bent Pyramid)와 붉은 피라미드 (Red Pyramid)로 유명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기자의 피라미드를 지은 쿠푸(Khufu) 파라오의 아버지인

스네페루(Sneferu) 파라오가 지은 피라미드들이다.

굽은 피라미드는 최초로 시도된 사방을 평평하게 만든 직선형 피라미드인데,

기초가 안정적인지 못했던 탓에 굽어져 버렸다고.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스네페루는 또 다른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되고,

그게 바로 붉은 피라미드이다.

  

붉은 피라미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날은 덥고 피라미드는 사막 한가운데 있다보니

아흐만이 '가능하다면 빨리 돌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햇빛을 피할 그늘 한점 보이지 않으니, 땡볕에 우리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걱정되었을터.

걸음을 재촉해 피라미드 밖에 설치된 아슬아슬한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군기지가 보이고

 

우리를 기다리는 아흐만의 차가 깨알처럼 보인다.

 

나무 계단의 끝에는 군인 한 명과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우리가 가진 표를 확인하고는 65미터를 내려가야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일단 피라미드에는 한번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괜찮다고 하니

오케이, 하면 옆의 작은 구멍을 가르킨다.

상하좌우 1미터 정도 될법한 구멍은 끝이 안 보인다.

상황 파악이 아직 안된 우리 뒷편에서 "라이트 브로크, 해브 플래쉬?" 외치는 아저씨.

우리는 각자 휴대폰 플래쉬를 켜고

몸을 한껏 웅크린채 쪼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사진만 봐도 또 힘들고 무섭다.

계단도 아닌 그냥 경사길.

우리가 밖에서 나무 계단을 오른 만큼 피라미드의 바닥까지 다시 이렇게 내려가는 것이다.

습하고 콩콩한 냄새에, 정말 칠흑같은 어둠에, 오리걸음으로 내려가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우리 뒤로 문이 닫혀버리면 어쩌나,

저 밑에서 피라미드의 망령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드디어 바닥에 다다르니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직각으로 꺾어 조금 더 들어가니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뻥 뚫린 공간이 나온다.

우리의 가쁜 숨소리 말고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백 년 전 이방인의 흔적.

 

한쪽 구석에 이렇게 계단이 있어 2-3층 정도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내 가방을 목걸이처럼 걸고 땀을 뻘뻘 흘리던 J)

 

이렇게 놀랍도록 매끈한 피라미드 내부 벽만 보일 뿐.

하다 못해 벽에 상형문자 한줄이라도 새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내 잘못이었다.

몇 천 년을 이 공간에 갇혀 있었던 듯한 냄새에,

사람의 모든 감각을 곤두서게 만드는 어둠에,

빨리 밖으로 나가고만 싶다.

 

다시 65미터를 되돌아 올라간다.

 

J 없었으면 나는 절대 가보지 못했을 곳이다.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고,

문지기 두 명에게 일상적으로 잔돈 조금을 주고 내려가려는데,

우리 차가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아흐만이 화장실을 갔다는 것.

다리가 후들거려서 다시 계단을 내려갈 일이 까마득하던 차에

조금 더 머물며 숨을 고르는데,

문지기 중 한 명이었던 군인이 피라미드 밑 순찰을 담당하는 동료를 크게 부른다.

알아듣지 못할 외침이 몇 번 오고가더니,

우리에게 피라미드 뒷쪽을 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고 일단 내려가는데, 내 다리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계단을 조금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 사진과 함께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다시 내려온 길.

 

아흐만이 오기를 기다리며

다른 군인 아저씨를 따라 붉은 피라미드의 뒷편을 구경하러 갔다.

원래는 접근금지지역이지만, 어쩌다보니 빽(?)으로 가게 된 것. 

 

저 멀리 굽은 피라미드가 보인다.

아쉽지만 굽은 피라미드는 닫아서 갈 수가 없었다.

 

붉은 피라미드 뒷편에 있던 미니 피라미드 앞에서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중 하나.

지금 보니 사진 세 장이 다 이렇게 약간 기울어져 있다.

 

피라미드의 파편인 듯한 한 큰 돌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조금은 관리가 필요한 듯한 외형이 아쉽기도 하고,

아직도 저 안에 내가 들어갔다 왔다는 것이 아찔하다.

 

그 사이 아흐만이 돌아와 차로 되돌아 가는 길.

이 아저씨께도 조금의 사례금을 드리고 차에 올랐다.

 

다시 한 번 굽은 피라미드를 멀리서나마 바라보며,

피라미드 데이의 종지부를 찍을 기자(Giza)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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