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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 검진 - 빠른 행동, 느긋한 기다림

by jieuness 2017.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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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옛날집과 8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엘리를 임신하고 프랑스에서 처음 갔던 산부인과와 가까워져 수시로 그 앞을 지나다니게 되었다.
자연스레 일 년 전 이맘때쯤, 설레이지만 막막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작년 3월 한국 방문 중에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네 산부인과에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일사천리로 초음파 사진 찍어주시고
엽산 꼭 챙겨 먹으라 살갑게 당부하셨다.

파리에 돌아와 허겁지겁 집 근처 산부인과의를 찾아 예약을 하고 방문 (열흘이 걸렸다),
영상의학과에 가서 초음파를 찍으라고 해서 또 예약을 하고 방문 (일주일이 걸렸다),
laboratoire에 가서 소변, 혈액 등 통한 기본 검사 받으라고 해서 방문 (예약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결과 받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아이고 속 터진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나의 시련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한 달 후에 초음파 사진과 각종 검사 결과를 들고 다시 검진 차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지난번과 다른 의사 선생님이셨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분만할 병원은 예약했니" 하신다. 
갈 곳을 잃은 나의 눈빛을 본 의사 선생님이 "지난달에 만난 의사가 얘기를 해주었어야 하는건데..." 하며 
주섬주섬 프린트물을 꺼내 늘어놓는다. 
 
임신 중 건강관리, 주의해야 하는 음식 등 일반적인 내용이 적힌 종이 몇 장이 넘어가고,
마지막에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출산 가능한 병원들 목록이 나온다.
공공병원과 사설병원이 나누어져 있는데, 
사설병원은 "이미 여기는 예약하기 늦었고..." 하며 아예 엑스자를 딱 그어버린다.
그리고 공공병원 중 Necker라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며,
"이 병원은 15구 주민이면 의무적으로 산모를 받아주게 되어 있다"며 이제부터 여기로 가면 된다고 하신다.

그날 어찌나 심란하던지... 나의 무지와 늑장대처로 아기가 더 좋은 시설에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무척 속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여자들은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오는 즉시 출산할 병원부터 예약한다고 한다. 
소문이 좋은, 특히 사설병원들은 그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고 하니, 
천천히 알아 보고 고르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임신 만 2개월차 초보 임산부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떠밀리듯 가게 된 Necker 병원은 다행히도 오래된 전통의 (내 또래의 프랑스인 친구 하나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유럽 최고 수준의 어린이 병원이었다.
새로 지어진 산과 건물은 시설도 훌륭했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엘리가 태어난 날, 그리고 입원기간 동안 고마운 경험도 많이 했다. 


프랑스의, 적어도 파리의 임산부는 행동은 빠르게, 기다림은 느긋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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