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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베이비 다이어리

빠리베이비 출산의 기록 (파리 15구 Necker 병원)

by jieuness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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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말이면 엘리1은 네 살이 되고,

엘리2는 돌을 맞는다.

엘리 남매가 투닥거리며 노는 걸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 한참 전 일이지만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2016년 초 엘리1을 임신한 걸 알았을 때, 나는 프랑스 의료보험도 없었고,

프랑스에서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정말 하나하나 부딪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격동의 9개월을 보냈다. 

출산할 병원 등록을 미리 해야하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아서

(프랑스에선 임신 사실 확인되면 바로 원하는 병원부터 예약한다고 한다)

선택의 폭도 없이 의사 선생님이 콕 집어준 대로

내가 살고 있는 15구에 공립병원인 Necker로 가야했다.

 

다행히 나중에 알고 보니 Necker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어린이 전문 병원으로

혹시라도 임신이나 출산 중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Necker로 가게 된다고.

그리고 엄청 오래된 병원이라 내 프랑스인 친구는 본인도 Necker에서 태어났고,

본인 누나도 Necker에서 조카 둘을 낳았다고 했다.

직접 찾아가 보니 새로 지은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산부인과 병동이 깨끗하고 마음에 들었다.

 

엘리2를 임신했을 때는 유경험자 답게 아주 여유로운 임신 기간을 보냈다.

집에서 더 가까운 사립 가톨릭 병원으로 등록을 할까 했지만,

새로 만나게 된 정말 마음에 쏙 드는 Sage-femme이 Necker 소속이라

결국 둘째도 같은 병원에서 낳게 되었다.

병원시설도 익숙하고 사람들도 다 친절해서 임신 중에 검사를 받으러 갈 때도,

출산과 산후 때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엘리1 때는 진통 중에 수중테라피용 욕조를 쓸 수 있어서

극심한 고통 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엘리 1호 태어난 날.

병원에 도착한지 12시간 만에 엘리1이 태어나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병실로 옮겨졌는데,

너무 배가 고파 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막 출산을 했으니 뭔가 환자식(?)이 나오겠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평범한 프랑스 브라서리 식당에서 나올 법한 밥이 나왔다.

프랑스는 산후에 특별히 먹는 음식도 없고

그저 화장실 잘 갈 수 있게 야채와 요거트를 꼭 먹으라는 sage-femme의 당부만 있었다.

 

지금 보니 식사를 찍어 둔 사진이 몇 장 있다.  

 

처음에 다소 충격적이었던 아침식사 사진은 없는데,

아침에는 빵 하나, 요거트 하나에 잼, 오렌지 주스,

그리고 커피나 핫초콜렛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방금 아기를 낳았는데 아침에 이렇게 먹으라고? 

물론 미역국까지는 기대 안했지만 달랑 차가운 빵과 요거트는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 식대로 해야하는 것.

엘리2 때는 은근 아침마다 핫초콜렛을 기다리기도 했다ㅋㅋㅋ 

 

지금도 생생한 병실. 난방이 과해 무척 더웠다.

엘리1이 처음에 몸무게가 많이 줄어 일주일을 입원해야 했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 옴짝달싹을 못하니 너무 힘든데

손 한줌밖에 안되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행복하면서도 긴장이 돼서

침대를 일자로 한 번 펴 본 적이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병실 안에 아기 목욕을 시킬 수 있는 크고 깊은 세면대가 있어서

아기 태어난 첫 날 간호사에게 목욕 시키는 법을 배우고

그 다음날부터는 우리가 직접 목욕을 시켰다.

J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었던 작고 소중한 엘리1.

 

그리고 작년 11월 어느 늦은 밤.

갑작스레 양수가 터져서 엘리1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가, 병원으로 와 준 친구편에 엘리를 보냈다.

그런데 이 날 출산하는 산모가 많아서,

분만실이 부족하면 근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신경이 곤두섰는지. 

일단 진통이 잦아질 때까지 걷다가 오라는 말에 1층 로비에서 인고의 새벽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병원 1층에서 제집인 듯 주무시는 J.

본인은 체력 비축을 위해 잠시 쉰 것이라 했지만, 저 때는 정말 얄미웠다.

 

그래도 엘리2 때는 전쟁 같은 진통 사이에는 여유가 좀 있었는지

아기가 태어나면 눕혀질 침대도 미리 찍어두었다.

 

엘리1이랑 구분이 안 가는 엘리2.

다행히 분만실에 자리가 있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는 불상사는 없었다.

엘리1 때처럼 욕조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이미 사용하는 산모가 있다고 해서 아쉬웠다.

대신 나는 되도록이면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결심했었기 때문에

(물론 엘리1 때처럼 진통이 심해지면서 "에피듀랄 실부플레!"를 외쳤지만)

진통이 올 때 자연적으로 통증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러

 자연분만 전문가가 큰 짐볼을 가져 와서 도와주었는데 정말 효과가 좋았다.

   덕분에 에피듀랄은 최대한 늦게, 적은 용량만 맞을 수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

엘리1 때 마지막에 밀어내는 것을 잘 못해 고생했던지라

엘리2 때는 산전 수업 때 "챔피언" 소리까지 들으며 열심히 준비해 자신이 있었는데,

분만 때까지도 진통이 약해 아기가 금방 나오지 않았다.

첫째 때보다도 오히려 오래 걸린 두번째 출산. 

병원에 도착한지 17시간만에 엘리2를 만났다. 

 

엘리1 X 엘리2 

엘리2 때는 첫번째 때보다 산후 통증도 훨씬 덜했고,

회복도 빠른 느낌이었다.

병실로 옮겨진 후 바로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였고,

마음도 훨씬 편해서 J가 없는 시간에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 엘리2는 처음 며칠 황달수치가 높아

엘리1 때처럼 또 다시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 했다.

매일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는지.

아기 황달 수치와 몸무게를 재는 새벽마다

오늘은 집에 갈 수 있겠지,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 

엘리1이 보고 싶어서 울기도 했다.

 

생후 3일째. 청각 테스트 중.

엘리2 때 남겨둔 병원식 사진들.

 

이게 문제의 아침식사이다. 근데 저 핫초콜렛이 별미(?)라서

차가운 빵을 찍어 먹는 재미가 쏠쏠. 

프랑스답게 매 끼니마다 치즈는 다른 종류로 빠지지 않고 나왔다.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적고 나니 

출산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 느꼈던 폭풍 같은 감정과

흥분과 신비로움... 참 좋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Necker병원에서의 경험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우선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친절한 스태프.

프랑스에서 산부인과 의사와 사쥬팜(sage-femme)은 거의 동일한 역할을 하는데,

사쥬팜이 분만과 산후 관리에서 모든 의료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그 외 산후에 아기를 돌보거나 병실을 관리해주는 등 일을 하는 보조 스태프가

수시로 도움을 주었다.

Necker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낯선 이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지 싶을 정도로

정성을 다해 나를 돌보아 주었고,

산모가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려는 모습이 보여 그 감동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국, 미국, 캐나다에서 출산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내 분만을 담당할지 모른다는 것.

산전 검사를 담당하는 사쥬팜은 분만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서,

진통이 온 당일 당직인 사람이 내 아기를 받아주게 된다.

엘리1 때는 진통 내내 나를 봐주던 사쥬팜이 정작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에는 퇴근을 해서

방금 만난 사람이 엘리1을 받았었다.

엘리2 때 내 분만을 담당했던 사람은 이탈리아인 사쥬팜이었는데

그 상냥함과 따뜻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엘리1, 2를 낳으며 마음을 다해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가끔씩 아이들과 Necker 병원 앞을 지나갈 때가 있다.

너희들과 엄마가 처음 만난 곳이야.

신비와 사랑의 체험을 한 소중한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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