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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III (April 2015~)/1906. 밀라노, 파르마, 친퀘테레

파르마의 하이라이트 -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공장 방문

by jieuness 2020.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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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이자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

바로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 공장 견학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자나 파스타에 뿌려 먹던 초록색 통에 든 크래프트표 파마산 치즈.

그게 진짜 파마산 치즈가 아니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치즈 대우도 안 해준다는 걸

몇 년 전 알았을 때 그 충격이란.

파르마 지방을 대표하는 치즈의 진짜 이름은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로,

파르미지아노는 파르마, 

레지아노는 파르마 동쪽에 위치한 레지오 에밀리아 지역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진짜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는

파르마, 레지오 에밀리아, 그리고 모데나 근처 지역에서 

목초만 먹고 자란 소의 우유로만 만들 수 있다. 


이 특별한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고 싶어 방문한 곳은

Caseificio San Pier Damiani.

Caseificio는 유제품이 만들어지는 목장 겸 공장을 뜻한다.  

인터넷으로 미리 방문 예약을 할 수 있는데, 일인당 10유로였다.

(*지금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20유로로 올랐다)


투어는 오전 8시반 시작으로, 늦어도 8시 45분까지는 도착하는 것이 좋다고

미리 안내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치즈를 만드는 작업이 매일 새벽 5시에 시작해 

오전 11시경이면 모두 끝나기 때문.

  숙소에서 차로 15분 거리였는데, 아침에 부지런히 짐정리하고 호텔 체크아웃 하고,

잠이 덜 깬 엘리 차에 싣고 투어 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1846년부터 같은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는 

San Pier Damiani 공장.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목초지 한 가운데에서 찾았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밖의 고요한 아침은 흔적 없고

우렁찬 기계음과 분주한 직원들로 활기차다.

성인 여럿이 푹 몸을 담글 수 있을 만큼 큰 기계가 여섯대.

아침 내내 사람의 힘으로 하나씩 차례대로 작업을 거쳐야 일이 끝난다. 

우유에 소의 위액에서 나온 응고제(rennet)를 넣고 일정 온도에서

기계가 계속 저어주면 이렇게 몽글몽글한 치즈 커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아직 피곤하신 두 분.


면보에 치즈 커드를 걸러 바퀴 모양의 틀에 넣어 굳힌다. 

기계 한 대당 45kg짜리 거대한 치즈 휠 두 개가 만들어진다니

하루에 최대 12개 치즈 휠 밖에 못 만드는 셈이다.  

사진에 보이는 길고 얇은 철판으로 치즈 휠 바깥에

공장의 고유번호, 생산일자 등을 음각한다.


우리가 찾은 San Pier Damiani의 고유번호는 외우기도 쉬운 3333.



치즈 휠은 20일 넘게 소금물에 담궈져 소금을 빨아들인다.

  

슬슬 잠이 깨고 장난기가 발동하는 엘리.


소금 목욕을 마친 휠은 저장고로 옮겨지는데,

사실 이 때까지도 정식으로는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라고 부를 수가 없다고 한다.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방문해

치즈의 생산, 보관 과정을 검사하고 휠 겉에 인증 도장을 찍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진정한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가 되는 것이다.



나무 선반에 올려진 치즈 휠은 일주일에 한번씩 

사람 손에 의해 일일이 위아래 방향을 바꾼다.

이때 나무선반에 맺힌 치즈에서 나온 수분도 깨끗이 닦는다.

오래될 수록 점점 치즈 휠의 색은 짙어진다.

가이드가 작은 망치로 치즈 휠을 통통 두드려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숙성된 기간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어린 치즈는 묵직한 소리가, 

수분이 많이 날아간 오래된 치즈는 더 맑고 가벼운 소리가 난다. 


창고에서 가장 오래된 48개월짜리 치즈.

개월 수가 높아질 수록 가격도 올라가는데다가, 

36개월이 넘어가면 찾는 이가 많지 않고,

또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막상 휠을 열었는데 치즈 상태가 좋지 않을

위험도 있기 때문에 36개월 이상 장기 숙성은 거의 하지 않는단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본인들이 생산한 치즈는 휠 통째로 도매업자에게 판매되고,

거기서 다시 전세계로 유통이 되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서 이곳의 치즈가 팔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단다.

그래서 어디서든 3333이 새겨진 치즈를 발견하거든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일반적으로 12-36개월 사이의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가 시장으로 나가는데,

요리에 쓰이는 건 18-24개월이 좋고,

치즈만 맛 보는 건 36개월을 추천한다고.


또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와 비슷한 맛이 나는 

그라나 파다노 치즈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그라다 파다노 치즈는 목초가 아닌 사료를 먹은 소의 우유도 사용할 수 있을 뿐더러

생산 지역이 더 넓고 관리도 덜 엄격하기 때문에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만큼의 품질을 기대할 수 없고 가격도 저렴하단다.

가이드 언니의 표정이 사뭇 단호했다.

 

저장고에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틀에서 형태를 잡은 치즈에

날짜를 표기하고 있다.

유청이 분리된 치즈 커드는 그 채로 바로 먹을 수도 있는데, 

영양도 풍부하고 맛있다며 유일한 아기/어린이 손님인 엘리에게 계속 주신다.

치즈 귀신인 엘리가 사양할리가.

진한 우유향이 나면서 쫀득한 모짜렐라 같기도 하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기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치즈라

아이들 첫 이유식으로도 먹인다니.


공장 견학이 끝나고 드디어 치즈 맛을 볼 차례.

12, 24, 36개월 치즈를 발사믹 식초와 잼에 콕 찍어 먹는다.

오래된 치즈일수록 입안에서 사각사각 소금기가 있는 치즈 결정이 씹히고

더 쿰쿰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어린 치즈는 더 향긋하면서 쫀듯하다.


무엇보다 치즈와 함께 페어링한 발사믹 식초가 눈이 띄이게 맛있었는데,

옆 동네인 모데나는 발사믹 식초의 원조이니

다양한 종류의 발사믹 식초가 있는게 놀랄 일은 아니다.

 저 중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배 맛 발사믹 식초는 저 자리에서 구입했다.

파리로 돌아와 아끼고 아껴 먹다가 마침 그저께 딱 끝냈다.

 그 외에도 24개월, 36개월짜리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도 큰 덩어이로 구입해

두고두고 잘 먹었었다.


두 시간 정도 걸린 견학 동안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 온 사람들의 자부심,

그에 걸맞는 품질과 맛에 정말 감동했었다.

투어 내내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쌀 수 밖에 없다"고

재차 강조하던 가이드님.

지금도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를 사고, 음식에 넣을 때마다

이 치즈를 우리 가족이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긴 기다림이 있었는지 생각한다.

어디 이 치즈 뿐이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

자연과 사람의 수고가 들어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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