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 새벽부터 교황님 뵙느라 폭염 속에서 몸과 마음의 열정을 다 쏟아 부었더니
얼마나 지쳤던지, 일단 숙소로 후퇴해서 다같이 시에스타 시간을 가졌다.
다섯시쯤이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왔는데,
여전히 작렬하는 태양에 정신을 못차리겠다.
사실 파리도, 로마도, 한여름에는 오후 4-6시쯤이 가장 덥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쳐서 햇빛을 막는게
에어컨이 흔하지 않은 유럽에서 여름을 나는 첫째 방법.
햇빛만 가려도 집안에서는 그럭저럭 지낼만 하다.
바티칸 정면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등지고 조금만 걸으면
티베르 강과 함께 천사의 성이 보인다.
우리는 매일 지나다니기만 하고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본래 2세기에 지어진 이 성은 옛날부터 바티칸에 위험에 처했을 때
교황이 피신했던 곳이라고 한다.
천사의 성 앞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천사의 다리가 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라서 여유롭고 기분좋게
티베르강 근처의 풍경을 감상하며 건널 수 있다.
다리 양쪽을 지키는 거대한 천사 동상들도 볼거리.
천사의 다리를 건너 로마 구시가지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인 Via dei Coronari에 접어들었다.
Coronari는 옛 묵주 상인들을 부르는 말로,
바티칸으로 몰려드는 순례객들에게 묵주를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있던 길이라고 한다.
San Salvatore in Lauro 성당.
유럽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거대한 동네성당.
이 동네성당에는 심지어 오상의 비오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성당 바로 맞은 편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아이스크림 가게 (Gelateria del Teatro) 발견.
아빠가 유명한 집인가 보니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가자 하신다.
유리창 너머로 생과일을 잔뜩 넣고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있는 가게 안.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시간이었다.
직원이 추천해 준 치즈케익이 들어간 맛, 레몬맛 등 세 가지 맛을 선택했다.
하나 같이 맛이 진하고 풍부하다.
사장님, 만족하십니까.
사진만 보아도 뜨거웠던 그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에 도착했다.
광장 한편에는 성 아네스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성당을 다녀온 다음날 뒤늦게 알게된 엄청난 사실.
바로 이 성전 안에 아네스 성녀의 두개골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고작 12세의 나이에 순교하셨기 때문에 아주 작은 유해라고 한다.
역시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법.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분수.
광장에서 십여분 더 걸어 판테온에 도착.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본래 로마신전으로 2세기 초에 세워졌고,
후에 교회로 탈바꿈하였다.
가장 잘 보존된 고대 로마 건물 중 하나라는 수식어에 맞게
원래 그대로의 웅장함과 정교함에 우와-소리가 절로 나온다.
신전 내부 천장.
'눈'이라는 뜻의 오쿨루스, 중앙의 거대한 구멍이 압도적이다.
네모 칸칸마다 층층이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디자인한 건,
단순히 미학적인 효과를 위함이 아니라 천장의 무게를 줄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지지대가 없는 돔 형태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니 놀랍다.
판테온에서 꼭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당시에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예술가는 판테온 신전을 완벽한 예술품이라 생각했고,
꼭 이곳에 묻히기를 청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나무로 되어 있는 신전 입구 천장이 흥미롭다.
판테온 근처를 쓰윽 둘러보면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를 가르키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혹 그 화살표를 찾지 못하더라도
어디론가 홀려 쓸려가는 듯한 인파를 따라가면 된다.
5년전, 여전히 무더웠던 여름. 이곳을 찾아 분수에 동전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엄마가 가방을 뒤적여 동전을 꺼냈는데, 아빠가 홀랑 낚아채 던져버렸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주 잘생긴 청년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내 막귀에도 참 좋게 들려 잠시 서서 감상했다.
그 사이 친절한 전여사는 감사의 동전을 총총 선물했고.
길지 않은 산책에 이렇게나 많고 화려한 유적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Journey III (April 2015~) > 1606. 로마, 바티칸 Rome & Vatic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바티칸 근처 식당 추천 - Borgo Antico (0) | 2016.09.18 |
---|---|
(4) 걷는 만큼 보이는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 아벤티노 언덕, 캄피돌리오 광장...) (0) | 2016.09.18 |
(3) 바티칸 정복(?)기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박물관) (0) | 2016.09.15 |
(1) 로마 여행의 제일 목적 달성 - 교황 알현행사 참석 (2) | 2016.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