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지금보다 더 철없던 때에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베드로 신부님.
늘 미사 전에 텅빈 성당 뒷자리에서 곧게 앉아 기도하시던 모습으로
어느 유려한 말이나 글보다도 더 큰 가르침을 주셨었다.
신부님께서 로마로 유학을 떠나신지도 어느덧 수년이 지났고,
드디어 로마에서 뵐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다니 감사한 일 많은 여행이다.
저녁식사로 회포를 풀던 중에 신부님께서 다음날 친히 가이드를 해주시겠다고 하셨고,
감사와 죄송한 마음으로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만나 뵈었다.
가고는 싶었지만 로마 교외에 위치해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이 첫 목적지.
바티칸 성벽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로마의 4대 대성당 중 하나인 성 바오로 대성당의 첫인상은 역시나 우와-이다.
복잡한 시내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해서인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규모와 여유로움이 다르다.
더위를 피해 오전 9시경에 도착했는데도 뙤약볕이 굉장하다.
성당 앞 뜰에 있는 야자수까지 가세하니 순간 남미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본래 성전은 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4세기 경부터 세워지기 시작했고,
이후 수차례의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다가
19세기 초 화재로 거의 소실되었던 것을 다시 지은 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성당의 정면에는 거대한 바오로 사도의 석상이 있다.
성당에 들어서자 금빛 천장에 시선이 빼앗긴다.
성당 천장과 맞닿은 벽에는 가톨릭 교회의 1대 베드로 교황부터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각 교황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교황님에게는 저렇게 특별 조명이 비추어지고 있다.
다음 교황님들의 초상화를 위한 자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더이상의 빈자리가 없이 다 채워지고 나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다소 황당한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그리고 중앙 제대 밑편에 있는 바오로 사도의 무덤.
상단에 작은 상자 안에 보이는 것은 바오로 사도를 묶었던 쇠사슬로 전해지고,
그 밑에 철창 뒷편으로 사도의 돌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무엇이기에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다 찾아뵐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성 바오로 대성당을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로마 스타일대로 아무 예고없이 버스가 늦어지는 바람에
그 더위에 30여분을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꼼짝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로마의 7개 언덕 중 하나인 아벤티노 언덕으로 향했다.
천천히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곳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본원.
소박한 안뜰을 지나
잠시 성 안셀모 성당에서 땀을 식혔다.
수도회 성당은 많은 기도의 힘 덕분일까, 항상 평화의 기운이 가득함을 느낀다.
수도원을 나와 근처에 또다른 명소라는 몰타기사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 왜 그리 유명할까 했더니,
대사관 대문의 열쇠구멍으로 보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 때문이란다.
로마땅에서, 몰 타땅을 통해, 바티칸땅을 볼 수 있다고.
그런데 이날은 마침 대사관에서 큰 행사가 있는지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
작은 열쇠구멍이 아닌 대사관의 울창한 숲같은 정원 건너 바티칸을 볼 수 있었다.
번쩍이는 훈장과 뱃지가 주렁주렁 달린 턱시도와 검은 드레스 차림의 신사숙녀 귀빈들도
또 다른 볼거리였는데, 아이고 참 더위에 고생이 많으시다 땀이라도 닦아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사관 옆에 위치한 성 사비나 성당.
도미니코 수도회 성당이다.
교황님께서 재의 수요일 예식을 시작하시는 성당이라고 한다.
어쩐지 성당 앞에서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을 보았는데,
성당 안에 혼인성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 사비나 성당 옆편으로는
오렌지 정원이라고 불리는 사벨로 공원이 펼쳐진다.
사실 로마를 돌아다니며 녹지가 있는 공원은 많이 보지 못했는데,
시원한 아름드리 나무에, 로마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요지에 위치한 공원이다.
로마에 저멀리 바티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오렌지 정원을 마지막으로 아벤티노 언덕을 내려오니
옛 전차경기장 터가 나타났다.
신부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으며 그냥 버려진 공터인가 하고 지나갔을 곳.
기원전 치열한 전차경기가 열렸을 이곳에서
이날은 큰 공연이 있을 예정인지 무대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부님의 안내를 따라 5-10분여 더 걸었을까.
한눈에 관광객들, 특히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이는게 보였는데,
바로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었다.
고대 로마시대의 하수뚜껑이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이 조각품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 사진은 철창벽 너머로 찍은 것인데, 저 입에 손을 넣어보려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어마어마했다.
'진실의 입'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두세 정거장 후, 베네치아 광장 근처에서 내렸다.
힘을 쥐어짜내 계단을 올라 도착한 곳은 캄피돌리오 광장.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광장이라고 한다.
한편에는 로마 시청이 자리하고 있고, 맞은편에는 박물관 있다.
이곳에 올라온 이유는 바로 이것.
돈 들이지 않고 로마 포럼 (포로 로마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제국의 신전, 공공건물 등이 모여 있던 지역인데,
5년전에 로마를 찾았을 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규모와 볼거리가 방대해서
오디오 가이드를 가지고도 헤맸었다.
특히 이렇게 뜨거운 날씨에는 그늘 찾기 어려운 로마 포럼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이렇게 한번 내려다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베네치아 광장은 그냥 지나가면서 보는 걸로.
이렇게 반나절을 로마 곳곳을 돌아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열두사도 성당이다.
열두사도 중 야고보와 필립보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날씨만큼 뜨거웠던 반나절의 로마 구경.
신부님의 설명이 곁들여져 보지 못했을 것들을 보고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느꼈던 날.
+아참, 이날 점심은 열두사도 성당 바로 근처에 있던
성당 이름을 딴 식당에서 먹었는데,
역시 현지인 신부님께서 데리고 가주신 곳이라 정말 맛있었고 서비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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