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금요일 저녁,
친구 커플이 집 근처에 곧 도착하니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왔다.
J는 곧 채비를 하고, 나는 하던 일을 마치는 대로 합류하기로 했다.
J가 나간지 30-40분쯤 지났을까.
나도 곧 나가려고 옷을 챙겨 입고, 친구 가져다 줄 생각에 한국에서 얼마전에 도착한 조미김 몇 봉지를 담고 있는데,
아이패드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들린다.
BBC앱에서 알림이 뜬 것인데, 파리, 총격, 테러, 사망, 우리 동네 이름... 잘 조합이 되지 않는 단어들에
잠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본다. 몇 분 전,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계속 들리기에 잠시 투덜거리며 닫았던 창문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분주한 차도는 텅빈 채 경찰차와 소방차들만 가로 막고 서 있고,
경찰, 소방대원, 군인, 응급의료진 등등이 속속히 도착한다.
J에게 전화를 하니, 집 바로 뒷편에 있는 카페에도 점점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모양이다.
다들 웅성거리고 있다며, 상황을 보고 곧 집으로 가겠다는 말로 일단 끊었다.
TV를 켜니 우리집 바로 옆 건물이 계속 화면에 잡힌다.
다시 J에게 전화를 하니, 카페 문을 닫아 나갈 수가 없다며,
방법을 찾아 친구들과 집으로 함께 오겠다고 한다.
J는 나간지 한시간 반여만에 통제된 길들을 겨우 지나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함께 뉴스를 주시하며, 바타클란 극장에서 들리는 총성을 실시간으로 모두 들어야 했다.
2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는 바타클란 극장에서 터져나온 총성은
너무 크고 비현실적이라,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총소리 맞아?" 연신 물었다.
다들 이른 아침에서야 잠깐 눈을 붙이고, 지하철이 모두 끊긴 탓에 친구들은 택시를 불러 떠났다.
토요일 오후, 근처 슈퍼에서 간단히 장을 보려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
TV에서 보이던 기자들이 모두 집앞에 모여 있다.
기자들, 경찰들, 슬픔과 호기심이 섞인 듯한 표정의 시민들이 한데 엉켜 장사진이다.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한 바타클란 극장.
파리의 여느 평범한 회색빛의 석조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길 위에서 항상 단번에 눈에 띄던 건물이다.
알록달록한 채색이며, 중국풍의 창문, 늘 바쁜 1층 카페...
이렇게 비극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누군들 알았을까.
일요일 오후. 짧은 기도로라도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싶어 꽃과 초를 들고 리퍼블릭 광장으로 향했다.
바타클란 극장을 지나 5분쯤 걸어 광장에 도착하니
애도의 노랫소리와 여기저기서 취재 중인 기자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묘하게 차분하면서도 격동적인 느낌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잠깐 들렸는데,
갑자기 10여명의 사람들의 우르르 뛰쳐들어오며
총소리가 났다며 어서 문을 닫으라고 소리친다.
순식간에 가게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진다.
극한의 긴장감에 오히려 나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패닉한 사람들과 아무 일 아니라며 진정하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J의 팔만 꼭 붙잡고 있었다.
이후 잘못된 경보였던 걸로 정리가 되었지만,
얼마나 모든 이가 깊은 곳에서부터 긴장하고 있는지,
금요일 밤 이전과 이후의 파리는 얼마나 달라져 버렸는지, 너무나 서글프다.
많은 초와 꽃, 사진들, 편지들...
우리가 본 파리지엔들은, 메이저 뉴스에서 보도된 것과는 사뭇 다르게
한결 차분하고 씩씩하며,
그들이 사랑하는 파리지엔만의 생활 -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것-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은 한결같이 조심은 해야하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전세계가 엄청만 물자와 인력을 들여 집중하고 있는 지금 이 파리의 비극이,
세계의 많은 곳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
이번 사건의 테러리스트 중 하나가 시리아 난민들에 섞여 유럽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다시금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은,
매일 일어나는 참혹과 공포에서 힘겹게 빠져나온 사람들이라는 것.
평화를 위한 기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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