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J가 선물로 준 르 브리스톨 호텔 스파+티타임 이용권.
봉쇄령 탓에 오랫동안 가지 못하다가
지난 6월 드디어 날을 잡아 다녀왔다.
르 브리스토 호텔은 파리 8구 엘리제궁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동네 여느 건물처럼 유서 깊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스파는 한 층만 걸어올라가면 되지만,
이 엘리베이터가 궁금해 일부러 타고 올라갔다는.
갑작스런 비가 쏟아진 초여름날이라 온몸이 물을 먹은 듯 무거웠는데,
도착하자마자 받은 시원한 물 한 잔이 감사했다.
이 얼마만에 마사지인지!
나를 돌보는 시간이 너무 없었던 건 아닌지 갑자기 내 자신에게 미안해진다.
마사지룸 안에는 샤워시설도 갖추어져 있고,
적당한 온도와 은은한 아로마향에 몸이 편안해졌다.
나는 한 시간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시작 전 평소 불편한 곳과 신경쓰이는 곳은 없는지 체크하는 마사지사의 물음에
내가 마사지를 정말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간지럼이 많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예전에 방콕에서 출장 기간 동안 매일 마사지를 받을 때도
한 번 웃음이 터지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간지럼이 멈추지를 않아서
울다가 웃다가 이게 마사지인지 고문인지 모르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다행히 부드럽지만 단단한 손을 가지신 마사지사 분께서는
내가 간지러울라 치면 문지르는 대신 강한 압박으로 누르는 테크닉을 보여주셨고,
편안한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사지가 끝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준비된 따뜻한 티와 스낵.
정말 감사한 하루였다.
원래는 이 날 스파 후에 1층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하는 것으로 예약되어 있었는데,
비 때문에 테라스는 닫았고, 아직 실내 다이닝은 제한되어 있던 때라
다음에 티타임만 따로 예약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긴 바캉스와 정신 없던 라항트레를 지난
9월 어느 날, J와 엘리2의 크레쉬(어린이집) 적응기간 완료를 축하하러
다시 르 브리스톨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 날도 비가 많이 와 가보고 싶었던 테라스는 닫았고,
대신 1층에 위치한 카페 안토니아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아이들 각각 학교와 어린이집에 무사히 보낸 걸 축하하는 날인데,
현실은 4시반까지 아이들 픽업하러 가야하니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한 것이 2시 45분이었다.
스파 이용권에 포함된 클래식 티타임은
영국식 애프터눈티로 샌드위치, 디저트와 음료가 함께 나온다.
예전에 스파에서 직원이 말하길, 여기 호텔에서는 핫초콜렛을 꼭 마셔봐야 한다고 해서
나는 핫초콜렛을 골랐고,
J는 시그니처 칵테일을 주문했다.
샌드위치 4종, 디저트 3종, 까눌레와 스콘이 나왔고,
아래 보이는 것이 핫초콜렛이다.
우선 핫초콜렛은 벨기에에서 마셨던 내 인생 핫초콜렛 버금가게 맛있었는데,
저 주전자는 꼭 핫초콜렛이 마르지 않는 마법의 주전자 같았다.
아무리 마셔도 마셔도 양이 줄지를 않아서 나중에는 항복해버렸다.
샌드위치는 하나하나 신선하고 짭쪼롬했고,
이어서 먹은 디저트들과 단짠의 조화가 좋았다.
보자마자 너무 귀여워 사진으로 남겨둔 무화과 타트.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무화과 조각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옆에 있는 파리 브레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피스타치오가 잔뜩 올려져
말이 필요없는 행복의 맛이었고.
가장 위에 있었던 레몬과 루바브 타트는 혀가 쨍하게 새콤한 맛이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마음에 가장 들었던 원픽은
조연인 줄만 알았던 스콘.
따끈하고 부드러우면서 쫀득했던, 헤이즐넛이 잔뜩 박힌 스콘.
파리에서는 스콘을 찾아보기 어려울 뿐더러 이렇게 맛있는 스콘은 어디서도 처음이었다.
맛있고 감사하게 잘 먹었습니다.
우리를 도와줬던 카페 직원이 설명해 주기를,
지하에 있는 아뜰리에에서 모든 초콜릿과 페이스트리를 직접 만든다고 강조했다.
지금 찾아보니 디저트들을 따로 구입할 수도 있구나.
그런데 스콘도 따로 팔려나?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여유롭고 즐거웠던 티타임을 뒤로 하고
아이들 데리러 가야하니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는데
직원이 선물이라고 그릇에 예쁘게 담아준 마카롱 네 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박스에 포장해 집으로 가져와 그 날 저녁 디저트로 먹었는데,
무슨 맛인지 맞춰가며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엘리원투의 모습에
너희들이 학교에 가면서 생긴 나만의 시간도 좋지만,
그래도 너희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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