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가족이 밤을 주우러 간다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같이 가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어른 넷과 아이들 넷이 모인 10월의 가을숲.
누나가 신던 장화에, 가방 깔맞춤 하고, 헬멧까지 장착한 오늘의 최연소 밤꾼.
그런데 이 분은 정작 낮잠 시간이 겹쳐 밤은 제대로 줍지도 못했다.
친구 가족이 알아둔 비밀의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세상에나 지천에 밤이 깔려있다.
동글동글 반짝이는 예쁘기도 한 밤.
엘리1은 한 15분 열심히 줍다가
자기는 못하겠다고 나가 떨어졌다ㅎㅎ
그리고는 친구 안나와 숲속의 집을 짓는다고 한참동안 바빴다.
J는 엘리2 낮잠 재우고, 엘리1은 집 짓고,
결국 나 혼자 주운 밤.
허리 한번 안 펴고 신나게 주웠다.
숲 안을 도는 바람, 톡톡 밤 떨어지는 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림.
마법같은 시간이었다.
가을의 모든 영양과 풍요로움을 담은 밤.
그리고 그 밤을 기꺼이 내어준 숲에 감사 인사를 하고,
양손 가득 밤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날.
부지런히 주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많이 남은 밤은
소금물에 하룻밤 담궜다가 잘 말려 지퍼백에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지난 3주간 하루가 멀다하고 밤을 찌거나 구워내며
나름 익힌 몇 가지 팁들.
가장 중요한 첫번째. 밤은 최대한 일찍 신선할 때 먹는다!
소금물에 담그고, 냉장고에 넣어도, 벌레 먹고 썩는 밤이 계속 생기더라.
신선할 때 익혀야 껍질도 잘 까진다.
두번째. 귀찮더라도 꼭 칼집을 내어 익힌다.
껍질에서 쏙 나오는 통밤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압력솥과 에어프라이기 두 가지 방법으로 밤을 익혔는데,
식감이 달라 가족들 간에 선호도가 갈렸다.
우선 압력솥에 요리할 때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밤을 꺼내 십자로 칼집을 내준 후에
밤을 채반에 올리고, 밤에 물이 거의 닿지 않을 정도로 물을 넣는다.
중강불에 올려 압력솥 추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줄여 20분 익힌다.
그 다음에 바로 김을 빼고,
찬물로 직행.
그럼 이 정도 완성도의 알밤을 만날 수 있다.
반 정도는 거의 손 안 대고도 밤알이 빠져나왔고, 나머지는 조금 부서지기도 했다.
부드럽고 폭신한 압력솥 찐 밤은 J가 좋아하는 버전.
내가 선호하는 에어프라이기 버전은,
칼집 내는 과정은 같고, 180도에 15분 굽는다.
이 방법의 최대 장점은 밤이 제 알아서 다 까져서 나온다는 것.
손으로 쓱쓱 까내면 너무 간편하다.
찐밤보다 훨씬 통밤 성공률도 높았다.
쫄깃쫄깃한 에어프라이어 군밤.
밤을 나누어준 친구들한테도 이 방법을 전수했는데, 오븐으로도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우리 가족이 밤난리에 빠진 몇 주 동안 엘리2가 가장 나에게 많이 한 말은 "밤"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 바암" 하던 밤먹보.
어젯밤 마지막 밤까지 다 구워서 처리했더니 시원섭섭하다.
마지막에는 신선도가 떨어져서인지 속껍질이 떨어지지 않는 밤도 많아서,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밤이 최대한 신선할 때 다 요리해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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